삼가동에 사는 은총에게

안녕 은총?

남들보다 늦게 미래에 대한 선택을 한 것 같아 고민하는 너의 불안한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 같아. 

내가 은총이의 고민을 보며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야.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는 올해 일흔 셋, 피아니스트 경력만 55년이고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셔. 근데 유키 구라모토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으시대. 유키 구라모토의 대학, 대학원의 전공은 피아노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물리학'이기도 해. 보통 피아노나 운동 같은건 어릴 때부터 하는 사람들이 많고, 재능이 따라줘야한다고 생각하잖아?

놀랍게도 유키 구라모토가 어릴 땐 스스로 본인의 수준으론 피아니스트는 어렵다고 생각했대. 그래서 그 당시에는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피아노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즐겼다고 하더라고.


꾸준히 피아노를 취미로 치다가 대학교 1학년 때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피아노 연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돈을 받고 연주를 한다는 책임감이 더해져 더욱 더 완벽한 피아노 연주를 목표로 하게 됐대. 오히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는 35세가 된 해에 전공과는 무관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를 선택하고 음악가의 길을 시작하게 됐어.

또 유키 구라모토가 음악가가 되기로 결정해서 바로 지금과 같은 주목을 받았던 것도 아니야. 보통 유키 구라모토의 대표곡을 꼽으라고하면 'Lake Lousie'를 꼽는데, 이 곡은 그가 47번째로 만든 곡이래. 이 곡이 디렉터의 눈에 띄어 글로벌하게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됐지.

유키 구라모토가 재능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좋아하는 마음을 놓지 않은 성실함이 지금의 그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 같아.


유키 구라모토는 70살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고 해. 오늘보다 더 나은 자신을 목표로 삼는, 정말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해. 

"누구라도 장점이 하나씩 있습니다. 꿈을 위해선 그 장점을 꾸준히 갈고 닦는 게 중요하죠. 내가 할 수 있는 걸, 계속해 보는 겁니다.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릴거예요. 의외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힘든 시기가 있겠지만, 반드시 누군가가 당신을 도와줄 겁니다. 당신의 장점을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반드시 그런 사람이 찾아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믿고 나아가세요." - 유키 구라모토, 2024


나는 내가 못나보일 때 유튜브 '오느른' 채널에 올라온 유키 구라모토가 한국의 시골길에서 새벽녘, 피아노 연주를 하는 영상을 보고 또 보곤해.

모두가 잠들었다가 서서히 깨어나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인 고요한 새벽녘,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가에서 밝아져오는 하늘 아래 그가 유려하게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그 어떤 말보다 위안이 되는 느낌이 들더라고. 은총에게도 이 영상을 추천하며 나도 응원이 늦었지만, 은총이의 시작을 축하하고 응원해!